그 자리에 있던 문인들에겐 기가 막힌 얘기였을 것이다.
예전에는 신춘문예와 별도로 학생논문이란 부문이 있었다.사망자가 두 명이 나오고 부상자도 속출했다.
행사가 끝나고 심사위원들도 함께 모여 다과회를 열었다.안타까운 소식을 듣자마자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달려온 사람들이었다.대학 생활 4년 내내 정치적 혼란이 심했다.
이정재 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.나는 최연소 참석자였을 것이다.
상금은 그때 돈으로 30만원인가.
열차 등급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.다행히 한 분이 그래 맞다고 내 편을 들어줬다.
집안은 부자라고 할 수 없지만 끼니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.이번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하면 영구집권의 총통 시대가 온다는 김 후보의 발언으로 유명했던 현장이다.
[사진 변양균] 1969년에 들어간 대학은 공부에 집중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.부산고 2학년까지는 나름대로 미술대학 입시를 준비했다.